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팔 전투 (문단 편집) === [[찬드라 보스]]와 [[도조 히데키]] === 한편 임팔 작전은 정치적인 면도 있었다. [[자유 인도 임시정부]][* [[싱가포르]] 점령 직후 일본이 세운 일종의 괴뢰 집단.]의 [[수상]] [[찬드라 보스]]가 [[도조 히데키]]에게 '일본군이 인도를 공격하면 자신은 [[인도인]]을 선동해 [[영국군]]을 몰아내고 친일 인도 정부를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이 있었다. 어찌 보면 도조를 비롯한 일본 군부가 가장 전략적으로 기대했던 요소였을 것으로, 일단 인도 독립세력 측으로부터 물자지원은 물론이고, 인도에 대한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앞서 [[아웅 산]]이 이끄는 독립세력과 연합하여 영국군을 몰아낸 버마와 동일한 전략 선상에서 본 것 같다. 찬드라 보스의 행적을 보면 찬드라 보스는 어디까지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란 논리로 당시 [[영국]]과 전쟁 중인 일본의 힘이라도 빌려서 인도 독립에 투신한 거지, 일본의 침략전쟁과 학살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열강의 반열에 오른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도 일본의 조선과 중국 침략을 비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핀란드]]도 [[겨울전쟁]] 당시에 자국을 침략한 [[소련]]과 싸우기 위해 [[나치 독일]]과 손잡은 바 있다. 이 결정은 당시 [[핀란드 대통령]]이었던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내렸고, 이 결정을 통해 나라를 구했기 때문에 핀란드의 국부로 칭송받고 있다. 만네르헤임이 단지 나치와 손잡은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보스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학살에 반대했듯이 만네르헤임도 나치 독일이 저지르는 만행은 철저히 반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땐 추축국의 편에 선 것은 맞으며, 인도 국민군이 자신들의 조국을 침공하는 작전에서 희생된 사실을 피할 수는 없다. 또한 아무리 이이제이의 측면에서 일본 제국과 손잡았다 해도, 일본 제국이 같은 아시아인들에게 한 만행들을 보면 영국과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오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은 처음에는 지배자인 영국에 맞서 일본의 지원을 받아 독립군을 양성했으나, 일본의 가혹한 통치를 보고 오히려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올 것 같아 영국과의 협상 끝에 협력, 그리고 전후 [[미얀마]]의 독립을 약속 받는다. 그럼 이쯤에서 '인도 역시 미얀마처럼 영국과 협상하여 독립을 약속 받고 영국을 지원하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실제로 인도는 1차 대전에서 영국을 지원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인도에게 주어진 건 부분적인 자치뿐이었다. 힌두 극우 암살단을 색출하기 위한 로울라트 법을 제정당했으며, 이후 자치 의회 구성과 선거권 확대 등 혜택이 주어졌지만 막상 독립에 대해서는 [[영국 정부]]가 계속 난색을 표했다.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상황에서 나치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릴 수 있었다. [[도조 히데키]]도 당시 다른 전장의 전황이 악화되어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정권 유지를 위해 작전을 인가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그 때 찬드라 보스가 부릴 수 있는 '인도 국민군' 병력은 실은 일본 군부가 결성한 것으로, 주로 [[말레이시아]]와 [[버마]]에서 일본군에게게 포로로 잡힌 인도군 출신 4만 3천 명이었다. 그러나 임팔 작전에 참여했다가 굶어 죽거나 몰살당한 후, 버마 방위를 위해 일본에게 이용당하는데 지친 그들은, 결국 자원 부족과 열악한 지원에 대한 사기 저하가 겹쳐서 모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거나 영국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전후 찬드라 보스의 인도 국민군 장병들이 [[전범]]/[[반역자]] [[재판(법률)|재판]]을 받을 때, 그 변호를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20년 간 [[변호사]] 영업을 쉬고 있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인도의 초대 수상이자 국부인 그 분 맞다.]. 재판 당시 인도의 여론은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그들은 분명히 인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영웅'이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네루 자신은 임팔 작전 당시 영국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또한 네루는 인도 국민군 출신들이 절대 새로 건국된 인도 군대에 입대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